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한동안 투자 거물들의 포트폴리오를 그대로 따라 사는 일에 꽤 진심이었습니다. 버핏이 산 종목을 뒤늦게 따라 샀다가 다음 분기 공시에서 그가 이미 팔았다는 걸 확인한 날, 그 허탈함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번 분기 공시를 보면서 그 경험이 다시 떠올랐고, 동시에 몇 가지 중요한 생각이 정리됐습니다.

드러켄밀러와 버핏, 같은 시장 다른 베팅
이번 1분기 13F 공시가 공개됐습니다. 여기서 13F란 미국 SEC(증권거래위원회)에 분기마다 제출하는 의무 공시로, 운용 자산이 1억 달러 이상인 기관 투자자가 보유한 미국 상장 주식 내역을 공개하는 제도입니다. 쉽게 말해 큰손들의 손패를 분기에 한 번 들여다볼 수 있는 창구입니다.
이번 공시에서 가장 눈에 띈 건 스탠리 드러켄밀러의 움직임이었습니다. 그는 브로드컴, 마이크론, ARM, 시게이트, 루멘텀 같은 AI 인프라 관련주를 대거 신규 매수했습니다. AI 인프라란 인공지능 연산에 필요한 반도체, 메모리, 광통신 장비 등 물리적 기반 설비 전반을 가리키는데, 쉽게 말해 AI가 실제로 돌아가려면 반드시 필요한 부품과 설비들입니다. 또한 알루미늄 대장주 알코아, 아르헨티나 ETF, 남미 에너지 기업까지 원자재·이머징 쪽에도 베팅을 늘렸습니다.
제가 이 내용을 보면서 처음에는 또 따라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멈칫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드러켄밀러는 회전율이 극도로 높은 투자자입니다. 회전율이란 일정 기간 동안 포트폴리오에서 종목을 사고파는 빈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회전율이 높을수록 단기간에 종목 교체가 잦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그는 불과 3개월 전에 매수했던 구글을 이번 분기에 전량 매도해 버렸고, 항공주와 금융주도 빠르게 정리했습니다. 1월에 산 종목을 5월에 확인하는 구조 자체가, 이미 그가 다 팔았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겁니다.
이번 드러켄밀러 포트폴리오에서 제가 참고 가치가 있다고 본 흐름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 AI 인프라(반도체, 메모리, 광통신)와 원자재를 하나의 세트로 묶어서 보는 시각
-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이머징 마켓(신흥국 시장)에 대한 비중 확대
- 헬스케어·바이오 쪽에도 매수 금액의 상당 부분을 배분하는 구조
정반대편에 있는 건 워렌 버핏, 정확히는 버크셔 해서웨이였습니다. 드러켄밀러가 구글을 전량 던진 시점에, 버크셔는 알파벳(구글 모회사)을 세 배 불타기했습니다. 불타기란 이미 수익이 나고 있는 종목에 추가로 매수를 집어넣어 포지션을 더 키우는 전략입니다. 버핏의 전통적인 스타일이 아닌 공격적 추격 매수라는 점에서 외신들은 후계자인 그렉 아벨 체제로의 전환이 실질적으로 시작된 신호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비자·마스터카드 매도의 진짜 이유, 그리고 모방 매매의 한계
버크셔가 비자와 마스터카드를 전량 매도했다는 소식은 솔직히 꽤 충격이었습니다. 15년 보유한 종목을 한 번에 정리한 겁니다. 비자는 추정 수익률 6배에 가깝고, 마스터카드도 2배 수준이었다고 알려졌습니다. 시장 일각에서는 "결제 산업의 시대가 끝났다"는 서사를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조금 더 들여다보니, 설득력 있는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두 종목을 담당해온 운용역이 바로 토드 콤스였습니다. 그는 버크셔 내부에서 그렉 아벨과 후계자 자리를 경쟁하던 인물이었는데, 아벨이 공식 후계자로 낙점되자 JP모건으로 이직하기로 했습니다. 제이미 다이먼이 직접 버핏에게 전화해서 데려가겠다고 했다는 일화가 알려질 정도로 운용 실력을 인정받은 인물입니다. 그가 담당하던 종목들—비자, 마스터카드, 아마존, 유나이티드 헬스케어—이 이번에 일제히 정리됐습니다.
이걸 보면서 다시 한번 느낀 게 있었습니다. 시장에서는 대형 기관의 모든 매매에 그럴듯한 산업 분석이나 거시 서사를 붙이려 하지만, 실제로는 인사 이동 같은 단순한 내부 사정인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는 겁니다. 공시 하나만 보고 "결제 산업 끝났다"고 판단하면 잘못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투자의 대가도 손절한다는 사실이 이번에 다시 확인됐습니다. 버크셔는 도미노피자를 1년 넘게 분기마다 추가 매수하다 이번에 전량 손절했고, 주류 기업 컨스텔레이션 브랜즈는 무려 95% 손실에 가까운 수준으로 대규모 정리를 했습니다. 모멘텀 투자(상승세를 타고 있는 종목에 편승하는 전략)와 가치 투자 모두 결국 틀릴 수 있다는 걸, 버크셔 포트폴리오가 직접 보여준 셈입니다.
SEC EDGAR 시스템을 통해 공개된 13F 공시 데이터에 따르면, 버크셔 해서웨이의 보유 종목 수는 이번 분기에 처음으로 29개로 줄어들었습니다. 기존에 유지하던 30~40개 종목 구성에서 벗어난 첫 사례입니다(출처: SEC EDGAR). 그리고 이머징 마켓 강세와 관련해서는, 실제로 올해 들어 MSCI 이머징 마켓 지수가 미국 S&P 500 대비 상대적으로 양호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참고할 만합니다(출처: MSCI).
결국 제가 이번 분기 공시를 보면서 내린 결론은 하나입니다. 거물들의 포트폴리오는 특정 종목을 따라 사는 용도가 아니라, 시장의 큰 흐름—AI 인프라, 원자재, 이머징으로 자금이 이동하고 있다는 방향성—을 읽는 참고 자료로 써야 한다는 겁니다. 드러켄밀러와 버핏이 같은 시장에서 정반대 베팅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누구를 맹목적으로 따라서는 안 된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아래 이루어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