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은 지 약 10년 만에, 데미스 하사비스가 다시 서울을 찾았습니다. 이번 방한에서 그는 1-2년 내 물리적 AI 돌파구와 5-10년 내 신약 개발 혁명을 예고하며, 한국의 AI 수혜 기업으로 삼성·현대차·SK하이닉스를 명확히 지목했습니다. 저는 그 발언을 들으며 2016년의 기억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물리적 AI 돌파구, 1~2년이라는 시간표
2016년 알파고 대국 직후, 저는 AI 테마주에 성급하게 진입했다가 꽤 쓴 경험을 했습니다. 기술이 실제로 돈을 버는 시점과 주가가 미래를 선반영하는 시점이 전혀 다르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체감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하사비스가 "1~2년 내 물리적 AI 돌파구"를 언급했을 때, 막연한 기대감보다 그 시간표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먼저 따져보게 됐습니다.
여기서 물리적 AI(Physical AI)란 화면 속 소프트웨어에 국한되지 않고, 로봇과 같은 실체를 가진 하드웨어에 AI가 결합된 형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챗봇이 몸을 얻는 것입니다. 하사비스는 공장 생산 라인, 가정용 로봇, 그리고 연구소의 자동화 랩(Automated Lab)을 구체적인 적용처로 꼽았습니다. 자동화 랩이란 실험 설계부터 데이터 수집, 분석까지를 로봇과 AI가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실험실을 뜻합니다. 인간 연구원이 24시간 붙어있지 않아도 실험이 돌아가는 구조입니다.
한국이 이 흐름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시각도 있고, 저도 부분적으로는 동의합니다. 현대자동차가 인수한 보스턴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는 이미 글로벌 로보틱스 시장에서 상징적인 존재이고, SK하이닉스가 생산하는 HBM(High Bandwidth Memory)은 AI 가속기의 핵심 부품입니다. HBM이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인 고대역폭 메모리로, AI 연산에 필수적인 반도체입니다. 실제로 엔비디아의 H100·B200 같은 AI 칩에는 SK하이닉스의 HBM이 탑재되어 있습니다.
하사비스가 한국의 AI 생태계 강점으로 꼽은 세 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삼성전자: 모바일 기기 및 반도체 설계·생산 역량
- 현대자동차 / 보스턴 다이내믹스: 로보틱스 하드웨어 플랫폼
- SK하이닉스: HBM 중심의 AI 핵심 칩 공급
다만 1-2년이라는 시간표가 주가에 반영되는 시점은 다를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기술 돌파구 발표와 실제 매출 계상 사이에는 통상 2-4분기의 시차가 존재하고, 그 사이에 주가는 이미 기대감을 선반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2016년에 제가 놓쳤던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신약 개발 혁명, 5~10년의 의미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사비스와 구글 딥마인드가 202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알파폴드(AlphaFold) 프로젝트는 단백질 구조 예측 문제를 사실상 해결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알파폴드란 수십 년간 실험으로만 풀 수 있었던 단백질의 3차원 입체 구조를 AI가 몇 초 만에 예측하는 모델입니다. 이 성과가 신약 개발의 어느 단계를 어떻게 바꾸는지가 이번 인터뷰의 핵심 중 하나였습니다.
하사비스는 기존에 10년 이상 걸리던 신약 개발 기간을 AI를 통해 몇 달, 혹은 몇 주 단위로 단축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수백 종의 신약 후보 물질을 동시에 설계하고 가상으로 검증하는 시대가 5~10년 안에 온다는 전망입니다. 이에 대해 "이미 다 된 것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좀 더 신중하게 보고 있습니다. 단백질 구조 예측과 임상 승인 사이에는 독성 검증, 임상 1·2·3상이라는 긴 규제 파이프라인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글로벌 제약 업계 데이터를 보면, 신약 후보 물질이 임상 1상에 진입한 뒤 최종 승인까지 도달하는 비율은 약 10% 내외에 불과합니다(출처: 미국 FDA). AI가 후보 물질 발굴 단계의 효율을 10배 높인다 해도, 임상 단계의 실패율 자체를 단번에 낮추기는 어렵다는 점은 투자자라면 반드시 인식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 흐름이 의미 없다는 건 아닙니다. AI 기반 신약 개발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는 기업들의 R&D 생산성(Research and Development Productivity)이 실질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는 점은 여러 연구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R&D 생산성이란 투입한 연구 비용 대비 출시된 신약의 수익 창출 효율을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국내 제약사들도 AI 신약 개발 투자를 빠르게 확대하고 있으며, 2023년 기준 AI 신약 개발 관련 국내 투자 규모는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했습니다(출처: 한국제약바이오협회).
5~10년이라는 시간표는 투자자에게는 사실 긴 호흡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하사비스처럼 기술 최전선에 있는 사람이 그 정도 시간을 제시한다는 건,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기대감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지만, 그 기대를 주가에 반영하는 타이밍과 실제 매출이 찍히는 타이밍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결국 하사비스의 이번 발언은 한국 시장에 두 가지 층위의 시그널을 동시에 보내고 있습니다. 1-2년 사이클의 로보틱스·HBM 수혜와 5-10년 사이클의 바이오·신약 플랫폼은 접근 전략이 달라야 합니다. 알파고 직후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기술 비전에 흥분하기 전에 매출 계상 시점과 밸류에이션(Valuation), 즉 현재 주가가 그 기대를 얼마나 이미 반영하고 있는지를 먼저 따져보는 순서가 필요합니다. 분할 매수로 진입 시점을 나누고, 실적 발표 시즌마다 실제 수치를 확인하며 비중을 조절하는 방식이 제가 2016년 이후 유지해온 원칙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