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에너빌리티가 주주총회에서 올해를 SMR(소형 모듈 원전)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박상현 대표는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 수주인 14조 7천억 원을 달성했다고 밝혔고, 올해는 글로벌 SMR 기업들과의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첫 해라고 강조했다. 같은 날 BYD는 판매량 세계 1위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수익성과 시장 점유율을 동시에 잃는 역설적인 위기에 직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두산에너빌리티를 처음 주목하게 된 건 가스터빈 수주 소식이 처음 나왔을 때였다. 솔직히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GE, 지멘스, 미쓰비시 중공업이 수십 년간 독과점해온 시장에 한국 기업이 비집고 들어간다는 게 쉽게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두산 그룹이 재무 위기를 겪었던 기억이 있어서 이 회사가 정말 장기적으로 기술 투자를 지속해왔다는 사실 자체를 의심했다. 그런데 수주 소식이 하나씩 이어지고, AI 데이터 센터 전력 수요 급증이라는 구조적 변화가 실제로 두산에너빌리티에 기회를 열어주는 것을 지켜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결국 시장에서 기회는 항상 준비된 기업에게 먼저 온다는 걸 이 사례가 다시 한번 보여줬다.
10년 기다린 가스터빈, AI 붐이 열어준 문
두산에너빌리티의 미국 가스터빈 시장 진출 스토리는 운보다 집념에 가깝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13년부터 1조 원 이상을 투자해 독자적인 가스터빈 개발에 매달렸고, 두산 그룹이 재무 위기를 겪는 와중에도 이 투자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AI 데이터 센터 전력 수요가 폭발하면서 기존 업체들이 납기를 맞추기 어려운 상황이 됐고, 후순위에 밀려 있던 두산에너빌리티에 자연스럽게 기회가 열렸다. 업계에서는 AI 붐이 두산에너빌리티의 미국 진출 시계를 10년가량 앞당겼다고 평가한다. 지난해 10월 빅테크에 가스터빈 2기를 처음 수출한 이후 12월 3기, 올해 7기를 추가 계약하면서 반년 만에 12기 누적 수주를 달성했다. 지난달에는 스팀터빈 수출도 처음으로 성사됐다.
내가 이 사례에서 특히 주목하는 건 SMR이다. 대형 원전은 짓는 데 수십 년이 걸리는 반면, SMR은 건설 기간과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는 차세대 기술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이미 세 곳의 글로벌 SMR 기업과 주기기 공급 파트너십을 맺었고, 창원에 세계 최초 SMR 전용 공장을 2028년 완공 목표로 건설 중이다. 가스터빈으로 쌓은 신뢰를 발판 삼아 SMR이라는 더 큰 시장으로 넘어가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다만 연간 가스터빈 생산 능력이 GE의 70~80기, 미쓰비시의 50기 이상에 비해 아직 8기 수준이라는 점은 냉정하게 봐야 한다. 기회를 잡은 것과 그 기회를 스스로의 생산 능력으로 지켜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사우디 발전소 프로젝트로 본 경쟁력
두산에너빌리티의 성장이 미국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다. 최근 5년간 사우디에서 무려 6조 7천억 원 이상을 수주하며 중동 시장에서도 핵심 플레이어로 자리 잡았다. 사우디 루마 1, 나이아 1 가스 복합 발전소 프로젝트는 2조 2천억 원 규모의 3,600MW급 초대형 EPC 사업으로, 설계부터 조달, 시공, 시운전까지 전 공정을 단독으로 일괄 수행하는 프로젝트다. 루마 1은 계획 대비 4%포인트, 나이아 1은 5%포인트 앞서 진행되고 있다. 생산된 전력은 25년간 장기 판매 계약으로 공급되는 안정적인 수익 구조까지 갖췄다. 미국 가스터빈, 사우디 EPC, 체코 원전, SMR까지 수주 기반이 지역과 분야 양면에서 동시에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 두산에너빌리티의 가장 큰 강점이다.
BYD 위기에서 배우는 교훈
두산에너빌리티가 기술 집념의 결실을 맛보는 동안, BYD는 정반대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BYD의 올해 1~2월 중국 내수 점유율은 7.1%로 급락했다. 2024년 연간 점유율 15%와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쪼그라든 것이다. 지난해 BYD 순이익은 약 7조 1천억 원으로 1년 전보다 19% 감소했다. 테슬라를 앞서는 판매량과 매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수익은 줄어든 것이다. 가격을 낮춰 시장을 장악하려는 전략이 단기적으로는 통했지만, 결국 수익성과 기술 경쟁력을 동시에 갉아먹는 구조를 만들었다.
BYD가 순이익의 두 배에 달하는 금액을 R&D에 쏟아붓고 있다는 점은 방향성 자체는 맞다. 하지만 이미 샤오펑, 니오 같은 경쟁사들이 스마트 기능과 자율주행에서 빠르게 치고 올라오고 있는 상황에서, 뒤늦은 대규모 투자가 얼마나 빠르게 격차를 좁힐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투자자 입장에서 BYD를 볼 때 주의해야 할 점이 바로 이것이다. 매출과 판매량이라는 겉으로 드러나는 숫자가 아니라, 수익성과 기술 경쟁력이라는 본질을 봐야 한다. 큰 숫자 뒤에 숨어 있는 구조적 문제를 놓치면 결국 뒤늦게 후회하는 투자가 된다. 두산에너빌리티와 BYD의 엇갈린 행보는 단기 성과보다 장기적인 기술 기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다.
📌 요약
두산에너빌리티는 10년간의 기술 투자가 AI 붐을 만나 결실을 맺으며 미국·중동·SMR로 수주 기반을 넓히고 있다. 반면 BYD는 가격 경쟁 전략이 수익성 급락과 시장 점유율 하락이라는 이중 위기를 불러왔고, 막대한 R&D 투자에도 경쟁 구도 변화로 단기 반전은 쉽지 않아 보인다. 겉으로 드러나는 숫자보다 기업의 기술 기반과 수익 구조를 먼저 들여다보는 것이 투자자로서 가장 중요한 관점이다.
본 글은 투자 권유가 아니며, 투자 판단과 그에 따른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