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바를 포함한 중국 기업 10곳이 최신 AI칩 허가를 받았지만, 실제로 납품된 물량은 단 한 건도 없습니다. 저는 이 팩트 하나가 이번 미중 정상회담의 본질을 가장 잘 설명한다고 봅니다. 젠슨 황이 동행했다는 장면에 기대를 걸었다면, 이 숫자가 냉정한 현실을 돌려줄 겁니다.

젠슨 황 동행과 수출통제, 왜 별개인가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일정에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막판 합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시장의 반응은 꽤 뜨거웠습니다. 반도체 협상이 물꼬를 틀 수 있다는 기대감이 퍼졌고, 저도 솔직히 처음에는 그 흐름에 기울었습니다.
제가 비슷한 상황에서 이미 한 번 데인 적이 있습니다. 이전 미중 정상회담 때 기대감에 미국 반도체 ETF(상장지수펀드) 비중을 늘렸다가, 정작 회담이 사진 찍기로 끝나면서 단기 조정을 고스란히 맞았습니다. ETF란 주식처럼 거래소에서 사고팔 수 있는 펀드로, 특정 지수나 산업군을 추종하는 상품입니다. 그때 얻은 교훈이 딱 하나인데, 상징적 장면과 실제 정책 변화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라는 겁니다.
이번에도 결과는 같았습니다. 제이슨 그리어 USTR(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는 반도체 수출통제는 이번 회담의 주요 의제가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여기서 USTR이란 미국의 통상 정책과 무역 협상을 총괄하는 행정 기관으로, 수출통제 정책의 실질적 집행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이 기관이 공식적으로 선을 그었다는 건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닙니다.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중국 기업 10곳이 최신 AI칩 수입 허가를 취득했지만 실제 인도 물량은 0건
- 미국 정부는 절차적 승인 이후에도 세부 조건을 추가해 공급을 사실상 지연
- USTR은 반도체 통제가 회담 의제 자체가 아니었다고 공식 확인
미국이 운용하는 방식이 교묘합니다. 허가는 내주되, 실제 공급은 막는 구조입니다. 절차적 승인과 실질적 공급을 분리해서 운영하는 이 방식은, 외교적 마찰을 줄이면서도 기술 봉쇄 효과는 그대로 유지하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기술봉쇄가 더 공고해진 이유
이번 회담에서 저는 수출통제가 완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원칙이 재확인됐다는 점에 더 주목합니다. 미국 정가와 안보 전문가들은 젠슨 황의 동행 자체에 싸늘한 시선을 보냈습니다. 단기적 거래 이익이 중국의 군사 AI 역량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실제로 중국 AI 기업들은 연산 자원 부족으로 서비스 운영에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습니다. 여기서 연산 자원이란 AI 모델을 학습하고 추론하는 데 필요한 GPU(그래픽처리장치) 기반의 컴퓨팅 인프라를 의미합니다. 이 자원이 막히면 AI 서비스 품질이 떨어지고, 사용자 접속을 강제로 제한하는 상황까지 벌어집니다. 이미 일부 중국 AI 기업들이 이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제는 국산 대안도 한계가 뚜렷하다는 겁니다. 중국의 자체 반도체 기업 SMIC가 생산하는 칩은 아직 엔비디아 H100이나 B200 같은 첨단 AI 칩을 대체하기에 역부족입니다. SMIC란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으로, 미국의 수출통제로 인해 첨단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도입하지 못해 기술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기술 격차를 단기간에 좁히기는 구조적으로 어렵습니다(출처: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
제 경험상 이런 국면에서 시장은 두 가지 신호를 혼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상회담 분위기라는 단기 노이즈와, 수출통제 정책이라는 구조적 방향성입니다.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면 매번 같은 자리에서 당합니다.
한국 반도체의 슈퍼을 지위, 언제까지 유효한가
미중이 각자도생(各自圖生)의 방향으로 굳어질수록 한국 반도체 산업은 독특한 위치에 놓입니다. 단기적으로는 호재입니다. 중국 AI 기업들이 자체 AI 인프라를 빠르게 구축하려 할수록 HBM(고대역폭메모리) 수요가 늘어납니다. HBM이란 여러 개의 D램 칩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전송 속도를 극적으로 높인 고성능 메모리로, AI 연산에 필수적인 부품입니다. 미국 빅테크와 중국 AI 기업 양쪽 모두 이 부품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의존하고 있으니, 한국이 슈퍼 을의 위치에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나 저는 이 지위가 영속적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각자도생 흐름이 강해지면 미국과 중국 모두 자국 메모리 산업 육성 압력이 커집니다. 미국은 마이크론에 CHIPS법(반도체지원법) 보조금을 집중하고 있고, 중국은 창신메모리(CXMT) 같은 자체 D램 기업을 빠르게 키우고 있습니다. 5년 뒤 양쪽의 자급률이 지금과 다를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출처: 한국반도체산업협회(KSIA)).
그렇다면 한국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HBM3E, HBM4 같은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 기술 격차를 더 벌리는 것입니다. 중국이 HBM2 수준을 따라올 즈음에는 한국이 이미 HBM4, HBM5 세대를 양산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금의 슈퍼 을 위치는 기술 격차가 유지될 때에만 의미가 있습니다.
정리하면, 이번 미중 회담은 반도체 봉쇄의 완화가 아니라 고착화를 확인한 자리였습니다. 투자자라면 정상회담 분위기에 올라타는 단기 트레이딩보다, 기술 봉쇄 구조가 장기화될 때 수혜를 받는 기업을 고르는 쪽이 더 유효한 전략으로 보입니다. 저도 그 기준을 다시 정비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분석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