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GPU 관련주를 쥐고 있다면 한 번쯤 물어봐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이미 가장 뜨거운 테마를 잡고 있는 게 맞는 걸까요? 저는 HBM 관련주가 한창 달아오를 때 뒤늦게 들어갔다가 수익은 쪼그라들고 조정 구간은 고스란히 버텨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경험 이후로 항상 묻게 됩니다. 지금 뜨거운 곳이 아니라, 다음에 뜨거워질 곳이 어딘지를.

피크아웃 논쟁, 그 배경을 짚어야 하는 이유
반도체 시장은 지금 두 갈래 시각이 정면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한쪽은 AI 슈퍼사이클이 후반부에 진입했다며 이익 모멘텀 둔화와 외국인 매도세를 근거로 제시합니다. 다른 한쪽은 수요 패러다임 자체가 가전에서 AI로 완전히 이동했기 때문에 과거의 호황-폭락 패턴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고 맞섭니다. 파이낸셜 타임즈는 메모리 공급 부족이 2028년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런 논쟁 한가운데서 삼성전자가 2025년 1분기 실적을 발표했습니다. 매출 133조 9천억 원, 영업이익 57조 2천억 원. 이 중에서 DS 부문, 즉 반도체 사업부에서만 53조 원이 넘는 영업이익이 나왔습니다. HBM4와 차세대 저전력 메모리 등 고부가 제품의 양산이 본격화되면서 이익의 질 자체가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HBM(High Bandwidth Memory)이란 D램을 수직으로 여러 층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극대화한 고대역폭 메모리로, AI 가속기의 핵심 부품입니다.
피크아웃 논쟁이 과열되는 이유 중 하나는 여기에 있습니다. 실적은 압도적인데 주가 방향이 불투명하다는 것, 그 간극이 투자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혼란의 시기가 오히려 다음 사이클로 넘어가는 전환점이었습니다.
핵심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삼성전자 DS 부문 영업이익 53조 원 돌파, HBM4 양산 본격화
- 파이낸셜 타임즈 분석: 메모리 공급 부족 2028년까지 지속
- 두산 CCL, 엔비디아 향 매출 분기 최대치 경신, 영업이익률 30% 돌파
- 메디슨 황 엔비디아 이사, 두산 로보틱스·LG전자 방문 확인
GPU에서 CPU로, 반도체 사이클의 주인공이 바뀌고 있다
가장 저를 붙잡은 분석은 따로 있었습니다. CPU가 다음 반도체 사이클의 주인공이 된다는 전망입니다.
에이전틱 AI(Agentic AI)라는 개념이 핵심입니다. 에이전틱 AI란 사람의 개입 없이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AI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기존 AI가 대규모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하는 GPU 병렬 연산 방식에 의존했다면, 에이전틱 AI는 복잡한 순차적 판단과 오케스트레이션, 즉 여러 작업을 조율하고 통합하는 역할이 중심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 CPU의 연산 비중이 90%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오케스트레이터(Orchestrator)란 여러 AI 에이전트나 시스템 간의 작업 흐름을 조율하고 통제하는 중앙 제어 역할을 말합니다. GPU가 힘 자체라면 CPU는 그 힘을 어떻게, 언제, 어느 방향으로 쓸지 결정하는 두뇌에 해당합니다.
문제는 공급입니다. 선단 공정의 병목 현상으로 CPU 리드 타임이 6개월 이상 길어지고 있습니다. 리드 타임(Lead Time)이란 주문 후 제품을 실제로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의미하는데, 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공급 부족이 심화되어 가격 상승과 관련 밸류체인 전반의 수혜가 확산됩니다. CPU 관련 기판인 FC-BGA(Flip Chip Ball Grid Array)와 후공정 소부장 테마가 다음 수혜 섹터로 꼽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FC-BGA란 CPU나 고성능 칩을 기판에 연결하는 고밀도 패키징 기술로, AI 반도체의 성능을 끌어내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소재입니다.
엔비디아가 국내 파트너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점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습니다. 두산 로보틱스와는 에이전틱 로봇 운영체제 구축을 위해 협력하고, LG전자와는 AI 플랫폼 아이작(Isaac)을 접목한 홈 로봇 상용화를, 현대차 그룹과는 이동형 플랫폼과 정밀 작업을 결합하는 바이 매니플레이션(Bi-Manipulation) 기반 로봇 개발에서 손을 맞잡고 있습니다. 메디슨 황 이사가 직접 한국 기업을 방문했다는 건, 단순한 협력 타진이 아니라 파트너 확정 신호로 읽히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두산의 CCL(Copper Clad Laminate, 동박 적층판) 실적도 이 전환을 뒷받침합니다. CCL이란 반도체 기판의 핵심 소재로, 전자 회로를 형성하는 동박과 절연층을 결합한 소재입니다. 엔비디아 향 매출이 분기 최대치를 경신하고 영업이익률이 30%를 돌파했으며, 태국에서 대규모 증산 결정까지 내렸습니다. 신한투자증권이 목표가 250만 원, 메리츠증권 240만 원, 하나증권은 167만 원에서 242만 원으로 상향하며 글로벌 CCL 업체 대비 저평가 매력을 강조했습니다(출처: 신한투자증권 리서치센터).
2차 사이클, 지금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1차 사이클에서 제가 항상 놓친 게 타이밍이 아니라 방향이었다는 걸 이번에 다시 깨달았습니다. GPU 관련주가 달아오를 때 뒤늦게 쫓아가는 게 아니라, CPU와 후공정 소부장 쪽을 미리 보는 시각이 2차 사이클에서는 중요합니다.
다만 냉정하게 볼 부분도 있습니다. CPU 관련 종목들이 이미 상당히 오른 상태에서 2차 사이클의 시작을 전망하는 분석은 언제나 불확실성을 내포합니다. 두산의 태국 증산 결정은 중장기 성장 가능성을 열어두지만, 초기 투자 비용 부담과 글로벌 CCL 경쟁 심화는 분명히 감안해야 할 리스크입니다. 피크아웃 논쟁이 여전히 진행 중인 만큼 한 번에 전량 진입하기보다 분할 매수로 리스크를 분산하는 전략이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25년 1분기 코스닥 시장에서 반도체 관련 업종의 외국인 순매도 규모가 확대되는 흐름이 포착되고 있어, 단기 수급 변동성에는 대비가 필요합니다(출처: 한국거래소).
이 글은 개인적인 투자 경험과 시장 분석을 공유한 것이며, 특정 종목에 대한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그에 따른 결과는 전적으로 본인 책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