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삼성전자를 볼 때 늘 메모리 하나만 보고 매수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러다 파운드리 적자 발표가 나올 때마다 단기 조정을 맞고 후회하기를 반복했습니다. 2025년 1분기 컨퍼런스콜에서는 메모리부터 파운드리, 휴머노이드 로봇까지 전 사업부에 걸쳐 동시에 의미 있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단일 호재가 아니라 전사적 방향 전환의 신호로 읽힙니다.

삼성전자 메모리 호황, 이번엔 구조가 다르다
제가 삼성전자를 보유하면서 가장 두려웠던 건 메모리 가격의 변동성이었습니다. 호황이라는 뉴스에 추가 매수를 했다가 가격 하락 한 번에 수익이 증발하는 경험을 한 분이라면 공감하실 겁니다. 그런데 이번 컨퍼런스콜에서 나온 장기 공급 계약 소식은 그 구조 자체를 바꾸는 이야기라 눈여겨봤습니다.
이번 발표에서 삼성은 일부 고객사와 이미 장기 공급 계약 체결을 완료했으며, 일반 공급 계약과 달리 상당한 구속력을 갖는 계약이라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장기 공급 계약의 구속력이란, 고객사가 계약 기간 동안 일정 물량을 반드시 구매해야 하는 조건이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메모리 가격이 하락해도 매출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는 뜻이라,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실적 변동성을 크게 줄이는 구조 변화입니다.
HBM(고대역폭 메모리) 실적도 주목할 만합니다. HBM이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전송 속도를 극대화한 고성능 메모리로, AI 데이터센터의 GPU에 필수적으로 탑재되는 부품입니다. 삼성은 HBM3E의 엔비디아 향 올해 물량이 완판됐다고 밝혔고, HBM 전체 매출이 지난해 대비 세 배 가까이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습니다. 3분기부터는 전체 HBM 매출 중 HBM3E가 절반을 넘어설 것이라는 구체적인 수치도 제시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6월 안에 HBM4E 샘플을 주요 고객사에 공급하겠다는 계획도 공개됐습니다. 통상 샘플 공급 후 약 1년에서 1년 6개월 뒤 양산 탑재가 이루어지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 엔비디아의 루빈 울트라 출시 일정과 맞아떨어진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메모리 수요 대비 공급 충족률이 역대 최저 수준이며 이 공급 부족이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함께 나왔습니다(출처: 삼성전자 IR).
파운드리 적자와 2나노, 냉정하게 봐야 할 것들
파운드리 사업에 대해서는 제가 경험상 좀 신중하게 접근하는 편입니다. "대형 고객 수주 임박"이라는 표현을 컨퍼런스콜에서 여러 번 들었는데, 실제 가시화까지는 생각보다 훨씬 긴 시간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같은 표현이 나왔기 때문에 기대는 하되 확신하기 전에 검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파운드리(Foundry)란 반도체 설계는 하지 않고 고객사의 설계 도면대로 칩을 위탁 생산하는 사업을 말합니다. 삼성 파운드리는 1분기에도 약 1조 5천억 원의 영업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다만 긍정적인 흐름도 분명히 있습니다. HBM3E 하단에 들어가는 로직 베이스다이가 삼성 4나노 공정으로 제작되고 있고, 엔비디아가 인수한 그록(Groq)의 LPU(언어처리장치)도 삼성 4나노 공정이 수주했습니다.
2나노 공정 기술도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고, 1.4나노 개발도 순조롭다는 언급이 나왔습니다. 특히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을 중심으로 2나노 고객 확보에 성과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제시됐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오토모티브·로보틱스 기업, 구체적으로는 테슬라, BYD, 샤오미 같은 기업들과 이나노 공정 채택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점도 처음으로 공개된 내용입니다.
이번 컨퍼런스콜에서 나온 파운드리 관련 주요 발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선단공정 가동률이 현재 최대 수준에 도달
- 2나노 대형 고객사 수주가 조만간 가시화될 것
- 다수의 고객사와 이나노 협력을 진지하게 논의 중
- 테일러 팹 중심의 미국 시장 공략 본격화
가전 사업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1분기 가전 부문은 부품 가격 상승, 물류비 증가, 중국 저가 공세가 겹치면서 사실상 이익을 내지 못하는 수준까지 수익성이 악화됐습니다. 삼성은 앞으로 저가 시장에서는 사실상 손을 떼고, 부가가치가 높은 프리미엄 제품에만 집중하는 방향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동시에 독일 플렉트사 인수를 통해 확보한 데이터센터용 공조 사업을 강화하고, 미국에 법인을 설립해 냉각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리겠다는 전략도 공개됐습니다. 유럽에서는 이미 이 분야 1위라고 하는데, 데이터센터 냉각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시점이라 실질적인 성장 동력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휴머노이드 출사표, 지금 당장 매수 신호는 아니다
이번 컨퍼런스콜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뜻밖이었던 부분은 휴머노이드 로봇 발표였습니다. 현대차나 LG에 비해 삼성은 로봇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조용했거든요. 2024년 말 레인보우 로보틱스를 인수하고도 약 1년간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는데, 이번에 사실상 공식 출사표를 던진 셈입니다.
휴머노이드(Humanoid)란 사람의 신체 구조와 유사한 형태를 가진 로봇으로, 두 발로 걷고 두 팔로 작업할 수 있어 인간의 작업 환경에 바로 투입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삼성은 레인보우 로보틱스 창업자이자 국내 최초의 휴머노이드 '휴보'를 만든 오준호 미래 로봇 추진단장을 중심으로 지난 1년간 기술력을 키웠다고 밝혔습니다. 로봇에 최적화된 부품을 직접 개발할 수 있는 역량도 확보했다고 합니다. 추가적인 로봇 기업 인수합병도 있을 것이라는 언급도 나왔습니다.
다만 삼성이 당장 소비자용 휴머노이드를 내놓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선은 자사 제조 생산 현장에 투입할 산업용 로봇 양산부터 시작할 것으로 보입니다. 제조 생산성을 혁신하겠다는 표현을 쓴 것도 그런 맥락으로 읽힙니다. 글로벌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은 2030년까지 연평균 4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출처: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삼성이 이 타이밍에 출사표를 던진 것 자체는 방향성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봅니다.
한 가지 신경 쓰이는 변수는 노조 이슈입니다. 총파업 가능성이 2주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삼성 경영진은 전담 조직을 통해 생산 차질 없이 대응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1분기 실적에 대한 상여금 논의가 진행 중이며 2분기 내 지급이 될 경우 2분기 영업이익 추정치가 다소 낮아질 수 있다는 점도 단기 투자자라면 감안해야 합니다.
결국 이번 컨퍼런스콜이 보여주는 삼성전자는, 메모리 하나에만 기대던 예전과는 달리 여러 사업부에서 동시에 체질 개선을 진행 중인 회사입니다. 저처럼 단일 이슈 하나만 보고 접근했다가 변동성에 흔들렸던 분이라면, 지금은 분할 매수로 접근하면서 파운드리 2나노 수주 가시화 여부를 확인하는 게 합리적인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호재가 많다고 한 번에 베팅하기보다, 각 사업부의 실제 실적이 숫자로 확인되는 시점마다 포지션을 조정하는 방식이 삼성전자 같은 복합 기업에는 잘 맞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투자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하에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