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기에 영업이익 80조원이라는 숫자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저도 눈을 한 번 비볐습니다. 삼성전자가 분기 최대 실적으로 57조를 찍었는데, 엔비디아는 그걸 하나의 분기에 가뿐히 넘겨버렸습니다. 지난 2년간 어닝콜을 챙겨봐 온 입장에서, 이번 발표는 숫자보다 젠슨 황이 던진 키워드 세 개가 훨씬 더 마음에 걸렸습니다.

숫자가 말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놓치는 것
이번 엔비디아 실적, 정말 압도적이었습니다. 매출 816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22조원. 전년 동기 대비 85% 성장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매출총이익률(Gross Margin)입니다. 여기서 매출총이익률이란 매출에서 원가를 뺀 이익이 매출의 몇 퍼센트인지를 나타내는 수치로, 기업이 얼마나 독점적인 가격 결정력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엔비디아는 이 수치가 75%입니다. 100원어치를 팔면 75원이 남는다는 뜻인데, 일반 제조업체가 10~20%대에 머무는 것을 생각하면 차원이 다른 수준입니다.
저는 SK하이닉스를 2년 넘게 보유 중이라 매 분기 어닝콜을 꼬박꼬박 확인해왔습니다. 처음엔 HBM 수요 확인 정도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젠슨 황의 발언 하나하나가 직접적인 투자 판단 기준이 되어 있더라고요.
다음 분기 가이던스(Guidance)도 시장의 예상을 크게 웃돌았습니다. 가이던스란 기업이 다음 분기에 예상되는 매출을 스스로 제시하는 전망치입니다. 엔비디아는 910억 달러, 약 136조원을 제시했는데 월가 예상치였던 868억 달러를 50억 달러 이상 뛰어넘었습니다. AI 수요가 꺾이기는커녕 오히려 가속되고 있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젠슨 황이 키워드를 던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이번 어닝콜에서 젠슨 황이 강조한 세 가지 키워드는 에이전틱 AI, 베라(Vera) CPU, 그리고 ACI 시장이었습니다.
에이전틱 AI(Agentic AI)란, 사람이 일일이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스스로 판단하고 도구를 활용해 업무를 처리하는 자율적인 AI를 의미합니다. 지금까지의 AI가 "이메일 써줘"라고 시켜야 움직이는 비서였다면, 에이전틱 AI는 스스로 이메일을 확인하고 답장을 보내고 일정까지 조율하는 독립적인 직원에 가깝습니다. 젠슨 황은 수십억 개의 AI 에이전트가 생겨날 것이고, 각 에이전트는 또 하위 에이전트를 만들어낸다고 했습니다. 이 말이 뜻하는 건 GPU 수요만이 아니라, 에이전트의 제어와 메모리를 담당하는 CPU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는 겁니다.
여기서 패턴을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젠슨 황이 과거에 키워드를 던졌을 때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시간순으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2023~2024년: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핵심으로 지목 → SK하이닉스, HBM 시장 점유율 62% 장악
- 2026년 3월 GTC: 광반도체를 미래 핵심 기술로 지목 → 광통신주 우리로 한 달 만에 639% 급등
- 2026년 CES: 피지컬 AI의 ChatGPT 모멘트 선언 → 현대차 +12%, 현대오토에버 상한가
제가 직접 목격한 것들입니다. 광통신 키워드가 나왔을 때 저는 "이미 너무 올랐는데"라며 망설였습니다. 결과는 한 달 만에 600% 넘게 폭등이었고, 저는 그걸 그냥 지켜봤습니다.
이번에 새로 나온 키워드, 무엇이 다른가
그렇다면 이번 어닝콜에서 새로 제시된 핵심은 무엇일까요? 저는 세 가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첫 번째는 베라(Vera) CPU입니다. 엔비디아 CFO는 베라 CPU 독립형 모델의 올해 매출 가시성이 200억 달러, 약 30조원이라고 밝혔습니다. 베라 CPU는 ARM 아키텍처 기반으로 설계된 엔비디아의 자체 CPU로, 에이전틱 AI가 GPU로 사고하는 동안 도구 제어와 입출력 처리를 전담합니다. 엔비디아가 GPU를 넘어 CPU까지 직접 장악하겠다고 선언한 셈입니다.
두 번째는 네트워킹 매출의 폭증입니다. 이번 데이터센터 매출 752억 달러 중 네트워킹 부분만 148억 달러로 전년 대비 199% 성장했습니다. 이건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아무리 고성능 GPU를 수만 개 꽂아도 이를 연결하는 네트워크 인프라가 없으면 병목이 생겨 서버 전체가 멈춥니다. 800G, 1.6테라급 광트랜시버와 광케이블이 AI 데이터센터의 혈관이 되는 이유입니다.
세 번째는 ACI(AI Cloud Infrastructure, 일반 산업·기업·국가 단위의 AI 인프라 시장)입니다. 여기서 ACI란 빅테크 외에도 은행, 병원, 공장, 국가 단위까지 자체 AI 인프라를 구축하는 거대한 시장을 의미합니다. 젠슨 황은 전 세계 50~100조 달러 규모의 실물 경제가 AI 인프라를 짓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빅테크 케팩스(CapEx, 설비투자)가 꺾이면 엔비디아도 끝"이라고 봤던 시각이 흔들리는 대목입니다(출처: NVIDIA 공식 IR).
그래서 지금 반도체를 팔고 테마주를 사야 하나
여기서 제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지점이 있습니다. 광통신 키워드가 나왔을 때 뒤늦게 추격 매수했다가 고점에서 물린 경험이 있습니다. 그게 딱 이 패턴의 함정입니다. "젠슨 황이 찍으면 폭발한다"는 서사는 매력적이지만, 이미 수백% 오른 종목에 올라타는 건 투자가 아니라 도박에 가깝습니다.
PER(주가수익비율)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PER이란 현재 주가가 주당순이익의 몇 배인지를 나타내는 밸류에이션 지표로, 숫자가 낮을수록 이익 대비 주가가 저렴하다는 뜻입니다. 엔비디아의 PER은 현재 43배입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7배 수준입니다. 합산 영업이익이 연 400조원 페이스를 달리는데 PER이 7배라는 건, 역사적 저평가 구간이라는 뜻입니다.
미국 30년물 국채 금리가 5.2%까지 상승해 200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환경에서(출처: U.S. Department of the Treasury), PER 43배의 성장주는 금리 압박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이익이 압도하는 저평가 구간은 금리가 올라도 실적이 방어막이 됩니다.
이번에 어닝콜을 다시 읽으면서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반도체 핵심 비중은 유지하면서, 광통신·로봇·에이전틱 AI 인프라는 분할 매수로 조금씩 포트폴리오에 추가하는 양손 전략. 교체가 아니라 확장이라는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그 확장에도 비중 관리와 분할 매수라는 규율이 빠지면 결과가 달라집니다.
중요한 건 다음 분기에 베라 CPU 독립형 매출이 처음으로 잡히는지, 그리고 네트워킹 매출이 200억 달러를 넘기는지, 이 두 숫자입니다. 그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테마 추격보다 훨씬 오래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제 경험상 생각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