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폴리오가 60% 빠진 상태에서 V자 장세를 지켜보는 건 생각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어제 코스피 장중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는데, 솔직히 입맛이 뚝 떨어졌습니다. 반도체 투톱은 버텨주는데 나머지 포트폴리오는 섹터를 가리지 않고 줄줄이 내려앉는 그림. 이게 펀더멘털 문제인지 수급 문제인지 판단이 안 서는 게 더 답답했습니다.

수급 꼬임이 진짜 원인인가
세아베스틸지주 -40%, LS일렉트릭 -72%, 우리기술 -50%, 한미반도체 -31%, GS건설 -35%, 미래에셋증권 -29%. 제가 직접 이 수치들을 정리하면서 뜨끔했습니다. 이 중 일부가 제 포트폴리오에 그대로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 제가 느낀 건 "한 박자 늦게 들어간 순환매의 대가"라는 자책이었습니다.
지금 시장의 변동성이 커 보이지만, 실제로는 펀더멘털 악화가 아니라 수급 꼬임이 핵심 원인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외국인의 6월 말 북클로징(월말 기준으로 보유 포지션을 정리하는 과정) 매도 압력
- MSCI EM 지수에서 선진국 지수로의 패시브 자금 이동 가능성
-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 한도 초과로 인한 매수 부재
- 개인 자금의 삼성전자·SK하이닉스 레버리지 ETF 쏠림
여기서 패시브 자금이란 특정 지수를 그대로 추종하도록 설계된 펀드 자금을 말합니다. MSCI 선진국 지수 편입 가능성이 높아지면 이머징마켓 ETF에서 자금이 빠져나가고 선진국 ETF로 이동하는 흐름이 자동으로 만들어집니다. 지금 외국인 매도의 일부가 이 구조적 이동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는 겁니다.
제 경험상 이런 수급 꼬임의 특징은 "좋은 종목도 같이 빠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낙폭이 크다고 무조건 저가 매수 기회로 보는 건 위험합니다. 특히 "억울한 섹터"라는 프레임이 저는 조금 불편했습니다. 빠졌다고 다 억울한 건 아닙니다. 연초부터 테마성으로 급등했다가 실적 시즌에 밸류에이션 부담이 드러난 종목과, 펀더멘털은 멀쩡한데 수급에만 치인 종목은 구분해야 합니다.
한국은행 신임 총재 체제의 첫 금통위에서 금리 인상 가능성이 언급된 것도 이 국면에서 살펴볼 변수입니다. 여기서 금통위(금융통화위원회)란 한국은행 내 최고 통화정책 의결기구로,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기구입니다. 한국은행이 도입한 점도표에 따르면 올 연말까지 기준금리가 3.0% 수준에 머물거나 한 차례 정도 인상될 가능성을 시장은 현재 반영 중입니다(출처: 한국은행). 금리 인상이 코스닥 성장주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건 분명하지만, 반대로 환율 안정으로 이어질 경우 수입 물가 완화라는 긍정적 효과도 있습니다.
낙폭과대 종목 선별, 어떻게 볼 것인가
제가 이번 장세에서 가장 힘들었던 지점은 "이게 거품이 꺼지는 건지, 아니면 수급에만 치인 건지"를 구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작업을 위해 그룹주 단위로 묶어서 보는 접근이 제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됐습니다.
현대차 그룹의 경우 현대차, 현대모비스, 현대오토에버가 AI 소프트웨어 인프라(SI)와 로보틱스 모멘텀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LG 그룹은 LG전자, LG이노텍, LG디스플레이, LG CNS, LG에너지솔루션까지 로봇 기판과 배터리 모멘텀이 맞물리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모멘텀이란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는 실적·수주·정책 등의 재료를 통칭하는 용어입니다. 그룹주 ETF도 수급 관점에서 살펴볼 만한 이유가 있는데, 현대차그룹 관련 ETF에 다음 달 로보틱스 밸류체인 종목이 추가 편입될 예정이어서 패시브 자금 유입이 기대됩니다.
2차전지 쪽은 좀 더 신중하게 봐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LG에너지솔루션의 미시간주 DTE에너지와의 ESS 공급 계약 소식이 시장에 훈기를 불어넣은 건 사실입니다. 여기서 ESS(에너지저장시스템)란 재생에너지나 전력망에서 생산된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공급하는 시스템을 말합니다. 전기차 수요와 별개로 성장하는 독립적 시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단일 계약 하나로 섹터 전체 턴어라운드를 선언하는 건 성급합니다. 1분기 실적에서 드러난 캐펙스(설비투자비용) 부담과 전기차 수요 회복 속도는 아직 확인이 필요한 변수입니다.
피지컬 AI와 로보틱스도 관심이 가는 영역입니다. 현재 로봇 시장은 수요가 공급보다 앞서 있는 구조입니다. 산업 현장에서 로봇을 써달라는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는데 공급 캐퍼(생산 능력)가 아직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국민성장펀드 출시로 로봇·바이오 분야에 대한 기관 자금 유입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바이오 쪽은 3분기부터 신약 개발 성과 시즌에 접어들면서 기술이전 계약 발표가 집중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미 기술 개발 완성도가 높고 주요 글로벌 제약사와의 협력이 진행 중인 기업이라면 실적 반영 속도가 다릅니다(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지금 당장 신규 진입보다 관찰이 맞는 시점이라고 제 경험상 판단합니다. 외국인의 실제 매수 전환이 숫자로 확인될 때, 그리고 6월 첫째·둘째 주에 수급 꼬임이 해소되는 흐름이 나올 때가 진짜 판단 구간입니다.
결국 이번 장에서 배운 건 하나입니다. 빠진 종목을 일단 억울하다고 보고 싶어지는 심리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 제가 한 박자 늦게 순환매에 올라탔을 때도 "이건 펀더멘털이 있으니까 된다"고 스스로를 설득했었습니다. 지금은 그 판단이 실적 기반인지 테마성인지 다시 냉정히 분류하는 작업이 먼저입니다. 추측이 아니라 외국인 수급 흐름의 실제 변화, 계약 공시의 계약 기간과 규모, 영업이익률 추정치의 방향성. 이 세 가지만 보고 움직이는 규율이 지금 이 장세에서 가장 필요한 태도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특정 종목이나 섹터에 대한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그에 따른 결과는 전적으로 본인의 책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