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하면, 저는 포트폴리오의 60%가 여전히 마이너스인 상태에서 이번 주 시장 데이터를 봤습니다. 제 핵심 비중인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버티고 있는데, 그 옆에서 델이 한 주에 66.5% 오르고 샌디스크가 올해만 일곱 배 뛰었다는 숫자를 확인하는 기분은 복잡했습니다. 안도와 포모(FOMO)가 동시에 왔습니다.

AI 수요 확산: 빅테크를 넘어선 구조적 변화
이번 사이클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수요 주체가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같은 하이퍼스케일러(hyperscaler), 즉 초대형 클라우드 사업자들이 AI 인프라 투자의 거의 전부를 담당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구조가 바뀌었습니다.
델 테크놀로지스의 최근 실적 발표에서 CEO는 신규 고객이 6개월 만에 50% 증가해 총 5,000개 기업으로 늘었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새로운 고객군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네오클라우드(Neo-cloud): 코어위브, 아이덴, 네비우스처럼 AI 전용 컴퓨팅 인프라를 구축하는 신흥 데이터센터 기업들입니다. 빅테크와 달리 AI 워크로드만을 위해 설계된 인프라를 빠르게 확장하고 있습니다.
- 소버린 AI(Sovereign AI): 국가 차원에서 AI 서버를 직접 발주하는 움직임입니다. 중동뿐 아니라 여러 나라가 자국 AI 인프라 확보를 전략적 과제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 일반 기업: 기존에는 관망하던 산업별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AI 서버 주문을 넣기 시작했습니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 역시 같은 맥락의 발언을 했습니다. 빅테크 이외의 국가, 산업, 기업에서 주문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사업부를 재편한다고 밝혔고, 앞으로는 빅테크보다 이 새로운 고객군의 성장률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델이 엔비디아 반도체를 조립해 납품하는 구조상, 두 회사의 발언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건 당연한 결과입니다.
제가 이 대목에서 실제로 느낀 건, 이게 단순한 경기 호황 사이클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AI 인프라 투자의 수요 기반 자체가 넓어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흐름에서 메모리를 핵심으로 들고 있는 제 포지션이 방향 자체는 맞다는 확인이었습니다.
병목 현상: 왜 지금 메모리가 대장인가
제가 이번 사이클을 지켜보면서 가장 확신이 생긴 순간이 있었습니다. 델 어닝콜(Earnings Call), 즉 기업 실적 발표 후 투자자·애널리스트 질의응답 세션에서 진행자가 "지금 가장 걱정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CEO가 "단연코 메모리"라고 답한 장면입니다.
정확하게는 D램(DRAM) — 서버와 PC에서 데이터를 임시로 처리하는 핵심 메모리 반도체 — 이 가장 심각한 공급 제약을 겪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다음이 낸드(NAND) — 데이터를 영구적으로 저장하는 플래시 메모리 — 이고, 이어서 CPU, 하드디스크 순으로 공급이 부족하다고 밝혔습니다. 엔비디아 GPU가 아무리 좋아도 메모리가 없으면 세트로 팔 수가 없습니다. 델 입장에서는 AI 서버 수주가 폭증하는데 정작 조립할 메모리가 부족한 상황인 겁니다.
이 발언 이후 메모리 관련주들이 동반 급등했습니다. 샌디스크와 마이크론은 신고가를 갱신했고, 마이크론은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하며 미국 시총 12위에 진입했습니다. 버크셔 해서웨이를 밀어낸 것입니다. 전 세계 메모리 3사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동시에 1조 달러 클럽에 합류한 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출처: Bloomberg).
D램 관련 종목들만 모아 놓은 D램 ETF의 올해 수익률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편입 종목별 수익률을 보면 키옥시아가 531%, 샌디스크가 614%에 달합니다. 개별주로 접근하기 복잡한 분들에게 D램 ETF가 유효한 이유입니다.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이 모두 편입되어 있어 글로벌 메모리 사이클 전체를 한 번에 담을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앤트로픽(Anthropic)과 메모리 3사 간의 전략적 투자 협약이 공개된 점입니다. AI 모델 기업이 메모리 반도체 회사들과 직접 협업 관계를 맺는다는 건, 메모리가 AI 추론(inference) 단계에서 얼마나 핵심 자원인지를 방증합니다. 추론이란 학습이 완료된 AI 모델이 실제로 질문에 답하거나 작업을 수행하는 과정을 말하는데, 이 단계에서 대용량 메모리 대역폭이 필수적입니다.
포트폴리오 관리: 행사 기대감과 핵심 비중 사이에서
돌아오는 주는 굵직한 이벤트가 연속으로 대기 중입니다. 6월 1일 대만 컴퓨텍스(Computex)와 엔비디아 GTC 타이완이 동시에 열리고, 6월 3일 마이크로소프트 빌드(Build) 행사, 6월 5일 전후로 젠슨 황의 한국 방문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ARM, 퀄컴, 마벨, 인텔 CEO가 총출동하는 역대 최대 규모 행사입니다.
솔직히 이 일정을 보고 ARM이나 퀄컴을 미리 사야 하나 손가락이 근질거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여러 번 겪은 패턴이 있어서 멈췄습니다. 행사 라인업이 공개되면 기대감으로 미리 오르고, 막상 행사가 열리면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지는 흐름입니다.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판다는 증시 격언이 이벤트 구간에서 가장 자주 발동됩니다.
특히 경계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젠슨 황의 방한을 앞두고 두산로보틱스 같은 종목이 시구 가능성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이벤트 기대감으로 움직이는 현상입니다. 피지컬 AI(Physical AI), 즉 로봇이나 자율주행처럼 물리적 공간에서 작동하는 AI 시스템은 분명히 중요한 테마입니다. 하지만 시구 여부와 기업 실적은 아무 연관이 없습니다. 이건 곡괭이(메모리 실적주)와 금광 테마주를 혼동하는 함정입니다.
6월 달력을 보면 변동성 확대 요인도 쌓여 있습니다. 새 연준 의장 체제 첫 FOMC(Federal Open Market Committee, 연방공개시장위원회 — 미국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핵심 기구)가 예정되어 있고, 스페이스X 상장이 시장 자금을 흡수하는 블랙홀로 작용할지 호재로 작용할지도 불확실합니다(출처: U.S.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저는 이번에 행사 수혜주 추격 대신 세 가지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 핵심 메모리 비중 트리밍: 많이 오른 구간에서 일부 비중을 줄여 변동성에 대비합니다.
- 소외주 솎아내기: 빠진 60% 중에서 실적이 뒷받침되는 종목과 그렇지 않은 종목을 구분합니다.
- ETF 활용: 개별주 판단이 어려운 구간에서는 반도체 전반을 담은 SOXX ETF나 D램 ETF로 분산합니다.
이번 사이클에서 메모리가 대장인 건 데이터로 충분히 확인됐습니다. 다만 그것이 곧 행사 기대감에 올라탄 이벤트 테마주를 추격하라는 신호는 아닙니다. 핵심 비중을 지키면서 실제 발표된 실적과 사실에만 반응하는 규율이 이 초양극화 장세에서 훨씬 합리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시장 분석을 공유한 것이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나 전문적인 금융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