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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B·CCL·동박, AI 렉 구조 변화와 투자 판단

by 억대연봉 2026. 6. 1.

광통신 테마가 수백 퍼센트 오른 뒤에 추격 매수했다가 고점에서 정확히 물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쓴맛을 잊지 못하는 저에게 "AI 렉 안에 들어가는 PCB 가치가 전년 대비 233% 급등"이라는 수치는 또 다른 충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수페타시스, 두산전자BG,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종목 이름을 듣는 순간 손가락이 근질거렸지만, 이번엔 일단 멈추고 구조를 먼저 뜯어보기로 했습니다.

기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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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렉 구조 변화, 왜 PCB가 병목이 됐나

일반적으로 AI 서버 성능은 GPU 스펙표 안에서만 결정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한동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HBM 테마를 쫓을 때도, 광통신 테마를 쫓을 때도 결국 시선은 칩 위에만 머물렀죠. 그런데 엔비디아 루빈 세대의 설계 변화를 들여다보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문제의 시작은 케이블입니다. 기존 AI 서버는 렉 뒤편이 구리 케이블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습니다. 국수 다발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구조였는데, GPU와 스위치가 늘어날수록 이 다발은 신호 손실과 냉각 방해, 조립 시간 증가라는 세 가지 문제를 동시에 악화시켰습니다. 엔비디아가 루빈 세대에서 밀고 있는 케이블리스(Cableless) 구조는 이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입니다. 스위치 트레이, 미드플레인, CX9·CPX 보드 같은 초고다층 PCB 안으로 케이블이 하던 일을 녹여넣는 방향이죠.

여기서 MLB(Multi-Layer Board)란 두 개 이상의 도체층을 절연층과 교대로 적층한 다층 인쇄회로기판을 말합니다. 신호층, 전원층, 접지층, 차폐층을 한 판 안에 수직으로 쌓는 구조인데, AI 렉에서는 이 층수가 기존 20~30층대에서 60층, 80층, 일부 분석에서는 100층 이상까지 올라가고 있습니다. 트렌드포스는 루빈 세대에서 미드플레인과 CX9·CPX 보드가 M9급 소재와 HVLP4 동박을 사용해 최대 104층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출처: TrendForce).

층수가 늘어난다는 게 단순히 두꺼운 판을 만든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은 제가 이 주제를 공부하면서 처음 이해한 부분입니다. 한정된 두께 안에서 더 많은 층을 촘촘하게 넣어야 하고, 층과 층을 연결하는 비아(Via)라는 미세 구멍도 오차 없이 뚫어야 합니다. 비아란 PCB의 서로 다른 층을 전기적으로 연결하기 위해 기판을 수직으로 관통하는 작은 구멍을 말합니다. 층수가 올라갈수록 수율 관리가 어려워지고, 이걸 잡는 업체와 못 잡는 업체의 격차가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집니다.

CCL·동박·HVLP, 소재가 성능을 결정하는 시대

소재 이야기는 솔직히 처음엔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CCL, HVLP, Q글래스 같은 단어들이 나올 때 눈이 자꾸 흘렀는데, 표피 효과 개념 하나를 이해하고 나서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표피 효과(Skin Effect)란 고주파 신호가 흐를 때 전류가 구리 배선 전체를 균등하게 쓰지 않고 표면 쪽으로 집중되는 현상입니다. 주파수가 높아질수록 전류가 실제로 이용하는 도체 단면적이 줄어드는 셈인데, 이때 구리 표면이 거칠수록 신호 손실과 왜곡이 심해집니다. 224Gbps급 이상의 초고속 신호가 흐르는 AI 서버 PCB에서 HVLP 동박이 중요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HVLP(Hyper Very Low Profile)란 구리 표면의 거칠기를 극도로 낮춘 저조도 동박으로, 고속 신호 환경에서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개발된 소재입니다.

CCL(Copper Clad Laminate)도 같은 맥락입니다. CCL이란 유리섬유와 수지, 동박을 고압으로 압착해 만든 PCB의 핵심 원재료로, 기판 자체의 뼈대 역할을 합니다. 신호가 빨라질수록 이 소재의 유전율과 유전 손실이 시스템 전체 성능을 좌우하게 됩니다. 유전 손실이 크면 신호가 약해지고, 열팽창이 크면 기판이 미세하게 뒤틀립니다. 과거에는 완성 기판 업체만 AI 밸류체인 이야기를 했다면, 지금은 CCL, 동박, 유리섬유 같은 상류 소재 업체까지 그 안으로 끌려 들어온 겁니다.

전력 구조도 완전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루빈 세대에서 언급되는 800VDC 아키텍처는 기존 54VDC 구조의 한계를 넘기 위한 설계입니다. 전압을 높이면 같은 전력을 전달할 때 전류를 줄일 수 있고, 전류가 줄면 열 손실이 제곱에 비례해 감소합니다. 하지만 고전압 환경에서는 기판의 절연 내력과 전원층 설계 난도가 훨씬 높아집니다. 결국 AI PCB는 신호만 보내는 판이 아니라 수백 킬로와트급 전력을 분배하고, 열을 버티고, 신호를 지켜야 하는 복합 시스템 부품이 되고 있는 겁니다.

투자 판단, 테마 이름보다 분기 매출이 먼저다

이 흐름을 국내 기업 관점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구분됩니다.

  • 이수페타시스: AI 렉 내 스위치 트레이·미드플레인·백플레인용 초고다층 MLB 공급 관점
  • 두산전자BG: M8·M9급 저손실 CCL 소재 공급, AI PCB의 원재료 병목 관점
  •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HVLP 계열 고급 회로박 시장 진입 여부, 일본계 소재 업체와의 경쟁 관점
  • 대덕전자·심텍·코리아서키트: 서버 메인보드보다 반도체 패키지 기판(플립칩 BGA) 쪽 낙수 효과 관점

각 기업의 전공 분야가 이렇게 다른데도 시장에서는 'PCB 테마'라는 이름 하나로 묶어서 움직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게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HBM 상승기에 SK하이닉스를 뒤늦게 쫓아갔을 때도, 광통신 테마에서 우리로·대한광통신을 추격 매수했을 때도, 테마 이름만 보고 들어갔다가 실적 발표 직전에 흔들려서 나왔습니다.

엔비디아가 GTC 2025에서 루빈 울트라와 MVL 576 하이퍼렉 인프라를 공개하면서 최대 600KW급 전력 소비 목표치를 언급했지만, 실제 양산 일정은 2027년 하반기 이후로 거론됩니다(출처: Tom's Hardware). 이 숫자가 현재 투자 판단의 근거가 되려면 실제 분기별 매출 데이터와 수율 지표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104층 PCB라는 수치도, 233% 급등이라는 수치도 특정 세대·특정 보드의 추정치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PCB·CCL·동박이 AI 인프라의 구조적 수혜 영역인 건 이제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그것이 지금 당장 진입해야 한다는 신호와는 다릅니다. 저는 이번엔 분기별 매출 추이와 수율 데이터를 먼저 확인하고, 직접 종목에 들어가기보다 반도체 관련 ETF로 섹터 전체에 분산하는 쪽을 우선 고려하고 있습니다. AI PCB의 진짜 승자는 기술을 말하는 기업이 아니라 고객이 요구하는 품질을 반복해서 찍어낼 수 있는 기업일 가능성이 높고, 그 증거는 결국 실적 숫자로 나옵니다. 테마에 먼저 반응하고 데이터는 나중에 확인하는 습관, 저는 이미 그 값을 충분히 치렀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은 반드시 본인의 기준과 책임 하에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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